머리카락이 아주 짧아졌네요. 이렇게 훅 잘라버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냥? 아니면 더워서?
"더워서"라고 얘기하긴 했었는데 그것도 맞고, 살짝은 충동적으로 밀어버린 거긴 해요. 이 정도로 짧은 기장은 고등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있는 그대로의 저 자신을 마주하고 싶었달까요. 머릿속에 있는 고민들을 좀 없애고 싶기도 했고, 머리카락이 없으니까 단순하게 생각하는 데 꽤 도움이 되긴 해요. 생각이 많은 건 여전하지만요.
말한 대로 헤어스타일은 어떤 식의 환기를 의미하기도 하죠. 좀 달라 보이기도 하고요.
아미분들은 조금 생소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변 반응은 매우 좋습니다. 지금이 제일 잘생겨 보인다고 하시는 분들도 좀 있고.(웃음) 예전부터 두상이나 머리숱에는 자신이 있어서 사실 이렇게 밀어도 나름 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편하고 깔끔하고. 심경의 변화가 있나?" 같은 질문을 계속 받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그것 빼곤 다 좋아요. 어떻게 보면 가장 힘을 뺀 헤어스타일이라서 그런지 오늘 촬영한 화보를 보니까 옷이 더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주제로 삼으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완전히 새롭다고 할 순 없지만 결국 RM과 미술, 예술을 잇는 일이 흥미로울 수밖에요. 윤형근의 그림을 여전히 곁에 두고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좋아하나요.
윤 선생님은 제 머리맡에, 서재에, 부엌에, 집 입구에 여전히 숨 쉬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 서면 제 고민, 제 생의 들쭉날쭉한 굴곡들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때론 아주 가까이서, 때론 아주 멀리서 절 가르쳐주신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지금 여기 안 계시지만 전 아직도 선생님께 배우고 또 자라고 있다고 느끼니까요.
인스타그램도 열심히 살폈습니다. 오늘은 8월 30일인데 가장 최근 포스팅을 확인하니 성능경과 김용익의 전시를 본 것 같더군요. 전에 '인스타그램은 일종의 큐레이션'이라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자신이 소개하는 전시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고, 한 명이라도 더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어요. 앞선 전시에서 뭘 보았나요.
언제나 어떤 작가님들의 전시를 보고, 제가 가타부타 하기가 좀 조심스럽긴 해요. 김용익 선생님은 원래 윤형근 선생님의 제자셨어요. 또 굉장히 존경하셨고요. 두 분이 주고받으신 편지도 남아 있고, 김용익의 윤형근에 대한 글도 있어서 꼭 개인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김용익 선생님의 전시 소회는 뭐랄까, 굉장히 복잡해요. 1970년대 한국 모더니즘과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사이에 하고 싶은 얘기가 굉장히 많았던 한 젊은 예술가가 어떻게 스스로를 써내려가는지, 그 번민을 모두 함께하는 느낌이에요. 저도 한편으로는 작가이다 보니 소름 끼치게 공감되면서도 마음이 복잡했어요. 창작자들이 보면 특히 더 좋은 전시라고 생각돼요. 성능경 선생님의 전 시는 현재진행형인 아방가르드를 목도하는 느낌이랄까. 지금 80대이신데도 여전히 퍼포먼스를 펼치는, 오래됐지만 너무 젊은 세계,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작업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곧 프리즈가 다가오는데, 서울의 갤러리가 힘줬다는 게 새삼 느껴지는 좋은 전시들이었어요.
시간은 흐르고 관점도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개인적으로 감지되고 있는 게 있는데, 최근 관심이 회화를 넘어 사진과 영화로 확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때요.
어디서 들은 말인데 컬렉팅이었나, 아니면 순수 애호였나... 그 단계도 대개 회화-조각-드로잉-사진 순서로 흘러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처음엔 회화의 물성이나 신체성에 강하게 감응됐다가 지금은 다큐나 사진, 영화로 세계가 좀 더 넓어지는 시기 같아요.
아는 사람은 알아봤을 폴 토머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의 한 장면을 올렸죠. 좋아하는 감독인가요.
최근 주변에 '시네필'이 많이 생겼어요. 배우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알고 있었는데,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몰랐어요. <펀치 드렁크 러브>도 좋다고 하던데 아직 못 봐서 시간이 나면 꼭 보려고요. 또 최근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보고 웨스 앤더슨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전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나 이창동 감독님의 <버닝>도 본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영화를 더 많이 보려고요. 아, 근데 <팬텀 스레드>는 여러모로 정말 좋았어요.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진짜 '강추'입니다.
글쎄요. 전시를 보고 영화를 보고 그걸 말하는 RM을 바라보니 대뜸 '작업자의 테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자 RM의 지금은 어떤가요.
작업자로서 그동안 오히려 스스로 룰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내 '과'가 아니라서, 잘 몰라서 혹은 귀찮아서, 아니면 나는 너무 바쁘니까, 하는 최근의 태도는 절대 금지하는 것을 절대 금지하는 것이에요. 그동안 세웠던 제 규칙들을 다 무너뜨리고 섞어버리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괴롭지만 참 재미있어요. 저를 다시 조립하고 있는 기분. 그래도 한 가지 지키고 싶은 건 '그 끝에 생겨나는 나도 나여야 한다는 것'. 아직 그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끝에 가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진심으로 영혼을 담아서 멋지게 잘해내야죠. 그럴 겁니다.
용산 어디쯤에서 함께한 오늘 일요일이 지나면 말한 대로 프리즈와 키아프를 앞세운 우리의 도시 서울은 예술로 물들 겁니다. 기대하고 있나요.
작년 프리즈에 참석했어요. 재밌긴 했는데 저는 스위스의 아트 바젤이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도 서울에 이런 이벤트들을 연다는 건 여전히 생경하면서도 멋진 일이에요. 해외의 좋은 갤러리들과 한국 미술이 만날 수 있다는 건 제게 가슴 뛰는 일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설레네요.
그와 발맞춰 보테가 베네타가 후원하는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죠. 개인적으로 패션 브랜드의 이런 행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습니다만, 어때요.
보테가 베네타가 좋았던 건, 그래서 함께하게 된 건 저를 원했다는 것도 있지만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티유 블라지와 화상 미팅을 했을 때 패션에 대한 얘기보다는 아트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했어요. "당신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우리 브랜드가 부합한다"는 그의 말이 가장 좋았어요. 보테가 베네타가 추구하는 특유의 우아함도 마음에 듭니다. 개인적으로 강서경 작가님의 작품을 이미 소장하고 있고, 리움미술관은 제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니까 이런 만남에 제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뻐요. 그리고 많은 브랜드가 더 진심으로 아트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잘 모르겠습니다. 괜히 무겁거나 진지한 쪽으로 흐를 마음은 없었거든요. 근래 RM을 생각하면 또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진지해지죠. 자기 삶과 행보에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왜 사람들이 저를 무겁게 받아들이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UN 연설이라든지 수많은 인터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피식쇼>라든지 <달려라 방탄> 혹은 제 브이로그 같은 콘텐츠만 보셔도 제가 그렇게 24시간 진지하고 무거운 사람이 아니란 걸 아실 거예요. 전 유머와 즐거움을 사랑해요. 그게 제 삶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유머와 책임 의식은 또 별개의 것이겠죠. 소명같은 것은 제가 원해서 가지게 된 건 아니지만, 이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재미와 즐거움만으로 삶을 이끄는 것도 좋겠지만 위에 약간의 소명을 떨어뜨리면 생이 더 다채로워질 수 있어요. 모두 이렇게 제가 무거워 보인다고 걱정해 주는 풍경도 재미나고요.(웃음)
세상에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여전히 이게 제 가슴을 뛰게 해요. 저를 살아가게 하고요. 재미와 소명, 그거 나쁘지 않은 레시피입니다. 사석에서 전 꽤나 웃기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건 기해 두고 싶네요.
사실 아주 개인적이거나 시시콜콜 가벼운 질문을 이만큼 썼다 싹 다 지웠다는 사실도 특기하고 싶군요. 그래도 하나만 묻죠. 자기 자신을 웃기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줄 아는 RM이 깔깔대며 자지러지듯 웃어버릴 땐 언제죠. 그토록 행복하게.
제게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고, 릴스나 숏츠를 보면서 웃곤 합니다. 그러네요. 중요한 건 제가 거대하든 가볍든 간에 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아요. 행복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하나는 알아요. 전 앞으로 더 많이 웃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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