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미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현재라고 생각해요. 과거는 지나갔으니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미래만 바라보며 살 때는 걱정이 많아지더라고요. 요즘은 현재에 충실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과거'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미 지나간 거잖아요. 지난 일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요. 과거에 대한 여러 감정 중에 후회도 있는데, 저는 사실 그때 분명히 최선을 다했고 최선의 선택을 했음에도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많아요. 그래서 더욱이나 과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서너 살 때쯤 바다에 빠져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기억이 나요.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튜브에 타고 있다가 물에 빠졌어요. 저는 꽤 오랫동안 빠져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은 아주 잠깐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날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어요. 선글라스 끼고 튜브 위에 누워있는 사진, 그 사진을 찍은 날이에요.어쨌든,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서, 저는 과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린 시절의 삶에서 그리운 것이 있나요?
얼마 전에 대구에 가서 제가 열일곱, 열여덟 살 때 처음 일을 시작했던 스튜디오와 작업실, 그리고 당시에 한창 돌아다녔던 남산동 골목들을 다시 찾았어요. 그때 골목의 공기 같은 것들이 생각이 많이 났어요. 가보니까 가게들은 달라졌지만 분위기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더라고요, 그날 부모님과 너무 먹고 싶었던 막창에 소주도 한잔했죠. 부모님은 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르시니까 그런 얘기도 좀 하면서요. 오랜만에 내려가기도 했고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첫 번째 공간은 어디인가요?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받았던 작업실이요. 회사에서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저도 작곡가로 작업실을 받았죠. 방음이 되어있는 작업실은 처음이었어요.대구에서 일을 할 때 그런 스튜디오도 있었지만 돈도 없고 해서 제가 혼자 일할 때는 그런 작업실을 못 써봤거든요. 신기했어요. 그때 그곳에서 당시 같은 회사에 있었던 작곡가 형, 누나들과 작업하면서 지냈어요
그때 기억에 남은 일이 있나요?
저는 연습생치고는 특이한 생활을 했어요. 일주일에 춤 레슨 두 번을 제외하고는 자유 시간이었거든요. 월말 평가만 준비하면 됐어요. 그래서 그날도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시혁 PD님이 와서 문을 탁 여는 거예요. 그전까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어요. 볼 일이 없었으니까요. "네가 윤기구나." 하셔서 "네" 그랬죠. 그날 방 PD님과 같이 오신 분이 신승훈 선배님이었어요. PD님이 제가 만든 걸 들려달라고 해서 그때 비트 만들면서 편곡하던 게 하나 있어서 들려드렸죠. 그랬더니 "어, 수고해." 하고는 가셨어요. 그게 저에게는 굉장히 신기한 일이었어요. 방 PD님도 처음 만났고 신승훈 선배님도 처음 봤으니까요.
'증명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어릴 때는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어쨌든 증명의 순간은 많았죠. Agust D로 제 작업을 하거나, 특히 외부 작업을 할 때는 '내가 방탄소년단의 SUGA가 아니면 과연 저 사람들이 나를 쓸까?' 싶어서 무조건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가치를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럴 땐 부담스러워요. 방탄소년단의 경우 매 순간 증명을 다 해냈다고 생각해요. 잘 안 풀렸을 때는 "잘 안 됐으니까 이제 증명해야 한다." 잘되면 또 "잘돼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증명해야 한다."고 지금까지 그래왔죠. 그걸 해냈으니까 지금의 저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은 몇 살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아직도 스물넷, 스물다섯 살 같아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정신없이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방탄소년단으로 살아오면서 개인 민윤기가 더 선명해지거나 희미해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예전에는 개인 민윤기와 SUGA를 구분하면서 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야 중심을 잡으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젠 떼어낼 수가 없다는 걸 받아들였어요. 동기화가 되어버렸죠. 다만 일의 영역이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리해놓으려고 해요. 민윤기를 중심으로 'SUGA', 'Agust D', 'Prod. SUGA of BTS' 이렇게 다 있는 거죠.
방탄소년단의 멤버로서 세상에 보여진 모습과 실제 일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보통 연예인들은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모습을 분리시키려고 많이 노력들을 해요. 특히 처음에는 더 그렇죠. 보여지는 모습을 더 잘 만들고자 노력하죠. 그런데 활동을 계속하다 보면 구분이 어려워져요. 합쳐지게 되어 있죠. 만약 TV에서 착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인 거예요. 제 기준으로 보면, 제가 근 10년 동안 누군가로 연기하면서 산다는 건 불가능해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색깔은 달라요. 그 색깔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다 다르고요.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착한 사람일 수도 있죠. 그래서 만약 누군가 제 모습이나 성격을 보고 별로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 사람에게 별로인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인 거예요. TV에 나오는 제 모습과 무대에서의 제 모습, 또 무대 아래에서의 제 모습은 전혀 다르지 않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상황과 기분에 따라 너무 많이 바뀌어요. 적어도 뭔가 꾸미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걸 누군가는 솔직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저에 대해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복잡한 존재잖아요. 한 가지를 가지고 그 사람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요. 저는 그 모든 모습들이 다 저인 것 같아요. 진중할 땐 진중하고, 웃길 땐 웃기고, 망가질 땐 망가지고, 멋있는 척해야 할 때는 그런 척하고. 제 안에 여러 명의 제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꺼내 보여주는 거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른가요?
다르죠. 과거의 저는 고민과 걱정, 후회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고민을 많이 했고 괴로웠는데 지금은 많이 내려놨어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제가 뭘 좋아하고,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고, 살아남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처음엔 팬데믹을 원망했는데, 그 시기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우리는 없을지도 몰라요. 사람마다 한계는 정해져 있는데 저흰 너무 달려왔으니까요. 매번 그렇게 한계에 닿을 듯 말 듯하게 살다보니까 우리가 지쳐있는지도 몰랐고, 뭘 하고 싶었는지도 몰랐어요. 그런 생각을 많이 정리해 보게 됐죠.
'과거'로부터 영향받은 게 있다면 뭘까요?
제가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는 편인데, 이건 제가 나고 자랐던 경상북도 대구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감정에 대해 참고 살아야 한다고 배웠어요. 기쁜 일이 있어도 기뻐하지 않는 게 좋고, 쉽게 화를 내서도 안 되고, 울어서도 안 되고. 감정도 절제하고, 소비도 절제하고 살았죠. 그러다 보니 특별히 뭘 한 게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변하지 않은 건 없어요. 모든 것들이 다 변했어요. '초심'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네가 아무것도 아닐 때를 생각해." 하면서 사람들을 쉽게 관리하려고 만든 말인 것도 같아요. 상황이 계속 바뀌는데 어떻게 똑같이 살 수 있겠어요. 중요한 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요 변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소신이 있나요?
예전에는 소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소신이라는 게 확고한 사람은 자신이 그 소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고요. 그래서 유연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소신이 없어요. 굳이 꼽자면 "현재를 살자."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정도예요.
'나의 결점'과 잘 지내는 방법이 있나요?
결점도 나라는 걸 인정하면 돼요. 전에는 별로 안 좋은 얘길 들으면 나 아닌데? 절대 아닌데? 그랬어요. 지금은 '나는 욕을 좀 먹을 만한 사람이구나. 그렇지만 내가 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니까, 굳이 신경은 쓰지 말자.'라고 인정하면서 저의 결핍을 안고 가요.
돌아보면 가장 캄캄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데뷔 전, 스무 살 때였어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준비하고 있던 팀이 소위 해체 수순에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데 연습생은 또 해야겠는 거예요. 저는 대구에서 올라와서 한 달 생활비가 정말 적었어요. 반지하 방도 못 구하는 돈이었죠. 그때 일을 시작했어요. 배달 아르바이트도 하고, 레슨도 하고 그렇게 돈을 막 벌기 시작했을 때 오토바이 사고가 났어요. 그로부터 10년 뒤에 결국 어깨 수술까지 하게 됐죠. 그때 정말 캄캄했어요. 방 안에 틀어박혀서 2주 동안 씻지도 않았죠. 무서워서 집 밖에도 못 나갔어요. '대학도 못 갔고 사고까지 나서 어깨가 이렇게 되어버린 지금, 도대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계속했어요. 지금까지 해온 게 너무 아까웠는데 그땐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도 없었어요. 막막했죠. 회사에서 어깨가 왜 그렇게 됐냐고 물어봐서, 배달 아르바이트 하다가 사고 났다고 하면 잘릴 것 같은 느낌에 그냥 계단에서 굴렀다고 했죠. 그러니까 회사에서 대학교 학비를 주면서 기다려줬어요. 그런 고비가 몇 번 더 있었죠.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깜깜해요.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내용을 쓰고 싶나요?
"두려워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불안해하지 말고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 쓰고 싶어요.
과거의 나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저 자신에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딱히 없어요. 그냥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제가 된 거니까요. 지금 아쉬워하면 너무 욕심이지 않나 싶어요.
하루 중 나만의 시간은 몇 시라고 생각하나요?
새벽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어요. 작업을 보통 그때 했거든요.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최대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저만의 시간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예요. 예전에는 피곤해하면서 계속 잤어요.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을 주로 했고 하루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죠. 요즘은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일어나고 눈 딱 뜨자마자 창문 열고 환기도 하고 주변 정리를 해요. 그러니까 하루의 시작이 기대되더라고요. 전엔 너무 바쁘게 살아서 그랬던 것 같고, 이제 여유가 생겼나 봐요.
어떻게 불릴 때 가장 기분이 좋나요?
저는 개의치 않는 편이에요. 우리 회사에서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편해요. 누구누구 님이나 씨, 이렇게 존대하는 게 편하죠. 반대로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저에게 반말을 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어떤 식으로 불려도 좋아요. 윤기라고 불러도 되고, SUGA라고 불러도 되고, 형 또는 동생. 어떻게든 좋아요.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팬데믹을 지나면서 알았어요. 멤버들이 없으면 진짜 심심하겠다는 걸요. 그룹 활동을 하면서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친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사 동기들이라고 다 친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저희도 당연히 저희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했죠. 그런데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이 모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 이상의 존재가 됐어요. 눈빛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죠. 제가 친구가 별로 없어요. 그런 저에게 멤버들은 동료이자 평생 갈 친구죠.
최근 자기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저는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책 읽으면서 상상하는 게 TV보다 더 재미있어요. 문제는 그래서 제가 항상 저에게 자문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는 거예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 거죠. 생각으로 채워야 할 때가 있고, 생각을 비워야 할 때가 있다고 봐요. 지금은 비워야 할 시점인 것 같아서 요즘은 저 자신에게 별다른 말을 하거나 질문을 던지진 않아요. 그냥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 가장 지배적이에요.
지금 시속 몇 km로 달리는 것 같나요?
30km 정도? 제가 내는 속도죠. 그런데 저의 실제 속도와 체감 속도는 다르잖아요. 예전에는 시속 120km로 달리고 있으면서도 체감 속도가 30km밖에 되지 않았어요. 다른 팀들은 몇 개월 만에 1위도 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못 하는지 초조하고 조급했거든요. 굉장히 천천히 가고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런 고민이,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는 걸 지금은 알아요.
요즘 몰입하고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외부 작업들을 꽤 하고 있어요.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어서 정신이 없긴 해요. 음악 작업말고 특별히 몰입하는 건 없어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이 있나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생각을 하나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계속 이어지거든요. 늘 그렇게 새벽 2시쯤 되면, 하겠다고 수락했던 일들을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이거 왜 한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못 한다고 할까. 아, 어떻게 하지? 마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거 끝나면 절대 다른 일 안 한다.' 이런 생각을 해놓고 또 다음에 일을 받아서 하고 있어요.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매번 후회를 한다니까요.
깨지 않았으면 하는 꿈이 있나요?
저는 가끔 이 현실이 꿈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꿈 같은 세상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제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그만큼 행복한 순간들이 많아요. 만약 지금 이게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아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지금은 없어요. 증명할 게 더 남았나 싶어요. 제가 하고 잇는 일은 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 결과물을 내야 하는 건 맞지만 저 스스로에게 성적이나 상 같은 건 크게 의미는 없거든요. 물론 받으면 좋겠지만. (웃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결 좋아하지만 못하는 걸 하고 싶어하진 않아요. 만약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면 저 자신에게 증명해야 할 게 생기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생기지 않았어요.
인생을 하나의 길이라고 본다면, 지금 어디까지 온 것 같나요?
인생은 너무 길어서. 아직 중간까지도 못 온 것 같아요.
자신을 향기에 비유하자면 어떤 향일까요?
저는 저에게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던한 삶을 사는 무던한 사람이고 싶어요. 아무런 향이 나지 않는다는 건 또 어떤 향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무향이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변화의 기로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죠. 개인적으로는 서른이 된 시점이기도 하고, 저희 팀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이 앨범이 나올 때 즈음에는 또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것 같아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고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나요?
믿지 않습니다.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거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엄청난 호재가 있을 때도 있죠. 그런데 그것도 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서 운명인 척하는 어떤 기회가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의 인물 중 닮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꼭 닮고 싶은 캐릭터는 없는데.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있어요.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 배우님이 연기한 황시목 검사요. 그 캐릭터가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아마 극 중에서 황시목이 그런 류의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시공간 어디론가 갈 수 있다면 가고 싶은 곳이 있나요?
영화를 보면 스위스에서 신분 세탁 같은 걸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스위스에서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연히 신분 세탁은 해선 안 되는 거니까 상상으로만요. 지금 삶이 힘들어서는 전혀 아니고, '지금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요. 평행 세계가 있다면 그곳의 민윤기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한 거죠.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면, 엔딩 크레딧에 올리고 싶은 곡은 무엇인가요?
이번 앨범에 들어있지는 않지만, Agust D로 작업한 곡 중에 '사람'이라는 곡이요. 이 곡을 발표할 때는 잘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이 곡 얘기를 많이 해서 알게 됐어요. 이 곡이 딱 저를 나타내는 곡이라는 걸요. 저는 제 곡을 잘 안 듣는 편인데, 이 곡은 꽤 자주 들어요. "사람들은 변하지 나도 변했듯이, 세상살이 영원한 건 없어, 다 지나가는 해프닝"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가사를 좋아해요. 다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죠. 엔딩 크레딧에 올린다면 이 곡이 어떨까 해요.
방탄소년단의 디스코그래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앨범은 무엇인가요?
<화양연화 pt.1> 앨범과 <화양연화 pt. 2> 앨범이 둘 다 비슷하게 의미 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저를 떠올리면서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은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두 장의 앨범 인트로 작업을 맡기도 했죠. <화양연화 pt.1> 앨범을 만들 때 재밌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부터 저희가 도약하기도 했죠. 인트로 작업을 스무 번은 넘게 다시 했어요. 마지막으로 할 때는 이게 통과 안 되면 나는 정말 도망가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었죠. 도저히 못 할 것 같았거든요. 한 달 가까이, 한 평 반짜리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썼죠. 그래서 애증의 앨범이 됐어요.
이 곡(시소)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가 이 곡의 스케치를 좋아해요. 그래서 스케치 풀 버전을 믹스테이프에서 공개할까도 생각했었던 곡이었어요.
이 곡(시소)의 비하인드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이 곡은 SIow Rabbit의 편곡 버전이에요. 저는 편곡 전의 버전을 조금 더 좋아하긴 해요. (웃음) 제가 이 곡의 코드 진행과 같은 흐름을 좋아하는데. 그러다 보니 제가 만드는 곡의 결이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조금 레트로 느낌이 나도록 편곡을 했어요.
자신의 취향대로 하는 사람과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상대에게 맞추는 게 더 편해요. 취향과도 상관없어요. 음식 메뉴도 잘 못 골라요. 뭐 먹을까 고르다가 2~3시간이 지나버려서 밥을 안 먹은 적도 있어요. 일을 제외하고,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누군가에게 맞추는 게 훨씬 편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더 강하게 든다면 그게 사랑일 수도 있겠죠. 사랑의 종류는 많으니까요.
감정을 조절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감정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거예요. 의미 부여를 하는 순간 괴로워져요.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하고, 나쁜 일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요.
비슷한 주제의 곡을 다시 만든다면 어떤 곡이 나올까요?
같은 주제라도 지금 다시 만들면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겠죠. 삶이 달라졌으니까. 이 곡은 벌써 4년 전에 나온 건데. 그때니까 이런 내용으로 나온 거예요. 지금은 모든 것에 더 초연해졌고 삶도 완전히 달라졌죠. 더 성숙한 버전의 어떤 곡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이 곡(싸이퍼3)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 곡은 공연에서 하면 너무 신나요. 이 곡을 공연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이 곡의 가사를 들어보면 엄청나게 분노한 상태예요. 2014년에 나왔는데, 그 시기에 외부에서 욕도 많이 먹었고 사람들이 우릴 왜 그렇게까지 싫어했나 싶을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두들겨 맞은 때였어서 억하심정이 있었나 봐요(웃음).
요즘에도 자극을 받는 말들이 있나요?
누가 나를 비난하거나 하면 자극받곤 했는데, 지금은 별다른 자극을 받지 않아요. 반대로 칭찬에도 큰 자극을 못 느껴요. 외부에서 들리는 말보다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들에 더 자극을 받아요. 어렸을 때는 서툴러서 곡을 쓰면 통과가 잘 안 됐는데, 요즘에는 많은 경우에 작업하는 대로 오케이를 받으니까. 이게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되는 거죠. 이게 최선일까? 이게 괜찮나? 이것보다 더 참신해야 하지 않아? 이런 말들을 저에게 계속해요.
곡과 랩에서 모두 순수하고 격렬한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지금 비슷한 에너지를 담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 세상이 젊은이에게 가혹한 것 같아요. 세상은 늘 젊은 세대에게 가혹했지만 지금은 더한 것 같고요.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분노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희망만을 가지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생존을 걸고 살아가고 있죠.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젊은 세대는 정말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위선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항상 하면서 살아요.
앞으로의 음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고 싶나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와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저희가 처음 데뷔했을 때 학교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 했어요. 저희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하지만 모두가 지쳐있는 시대에 위로나 공감, 또는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Agust D로 낸 곡 중에 '이상하지 않은가 (feat. RM)'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에서 그런 물음을 던진 적도 있죠. 앞을 바라보면서 필요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Proof 앨범은 방탄소년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해요. 이 앨범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도 연차가 있는 편이어서, 이제 방탄소년단으로서 저희만의 길이 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앨범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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