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현재이고 앞으로도 현재일 거 같아요. 미래는, 아닐 미(未)에 올 래(來), 바로 오지 않는 것이고, 결국 불투명한 무엇이죠. 과거는 이미 지나간 거고요. 현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를 살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살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과거’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래된 서랍장을 열면 그 안에 가둬져 있던 공기 때문에 약간 텁텁한 냄새가 나잖아요. 그게 썩 나쁘지 않단 말이죠. 본가나 할머니 댁에 가면, 또는 제가 예전에 살았던 방에 가면 서랍을 열었을 때 냄새가 나면서 저를 깨우는 그런 게 있어요. 옛날 생각도 나고요. ‘과거’는 그런 오래된 서랍장을 열었을 때 나는 냄새 같아요. 조금 멀리 서서 “아, 이런 게 있었지.” 정도의 단어요.

나무의 향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서랍장들도 다 나무 서랍장이에요. 나무는 쓰면 쓸수록,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닿을수록 반질반질하게 닳잖아요. 제가 파티나(patina, 고색)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파티나가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가구가 좋아요. 그게 나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특성인 것 같아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최초의 기억은, 세 살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빌라와 다가구 주택이 많았던 언덕 꼭대기에 살았던 기억이 나요. 그때 아버지, 어머니가 이유식 장사를 하셨어요. 아버지가 퇴근을 하시는 저녁 무렵이나 주말에, 지금 생각하면 참 위험하지만, 오토바이 운전하시면서 저를 무릎에 태워서 언덕을 넘으면서 이유식 배달을 하셨죠. 그때의 그 공기를 기억해요. 그때는 마냥 재밌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언덕을 막 내려가면 앞에 장애물이 없잖아요. 위험한데도 제가 너무 좋아해서 저를 태우고 다니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요.

그 시절의 삶에서 그리운 게 있을까요?
계산 없이 만났던 그런 관계들이요. “너 어디 사는 누구라며?”하면 그냥 친구가 되는 관계. 어릴 때는 그 말 한마디로 그렇게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학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들과 닭싸움도 하고 정글짐에도 올랐어요. 학교 다니면서 “나 옆 반의 누군데, 네 이름 많이 들었다.” 이런 말 한마디로 친구의 친구가 내 친구가 되고 그랬죠. 제가 RM이 되고나서부터는 모두가 다 저를 알게 되고 그래서 편견이 있을 수 있고,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라고요. 서로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인 부분이 있으니까요. 여러 사람들을 겪으면서 마음의 문을 닫기도 했어요. 그래서 유독 사람들이 저를 몰랐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동등하게 만났던 관계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어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첫 번째 공간은 어디인가요?
열세 살, 열네 살 즈음 일산에 살 때 있었던 컴퓨터 방이요. 집에 서재처럼 컴퓨터 방이 따로 있었는데, 책상과 컴퓨터 하나씩 놓으면 끝나는 작은 자투리 방이었어요. 진짜 작은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마이크도 사서 처음으로 녹음도 하고 가사도 쓰고 했죠. 그 방으로 인해 ‘제 공간’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으로 살아오면서 개인 김남준이 더 선명해지거나 희미해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예전에 ‘LOVE YOURSELF’, ‘MAP OF THE SOUL’ 시리즈를 하고 앨범의 메시지를 이야기하면서, 융(Carl Gustav Jung)의 이론을 공부했고 페르소나(Persona)-그림자(Shadow)-자아(Ego)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법으로, 제 페르소나인 방탄소년단의 RM과 김남준이라는 자아를 분명하게 분리하면서 살면 더 잘 살아갈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해왔어요. 그런데 오히려 김남준과 RM이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중간 지점을 찾아 겹쳐졌죠. RM으로 얻는 경험을 인간 김남준에게 투영하고 싶어지고, 김남준으로 하는 생각을 RM의 음악에 녹여내고 싶어지고… 이렇게 상호 작용을 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언젠가 개기월식처럼 조금 더 겹쳐지기를 바라고 있고요. 교집합이 많아지면,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삶을 사는 데 더 능숙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의 멤버로서 세상에 보여진 모습과 실제 일상에서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한가요?
70~80% 정도는 비슷한 것 같아요. 저는 저를 드러내면서 살아왔던 편에 속해요. 그런 선택들로 인한 리스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제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솔직하게 많이 공유하려고 노력했죠. 어떻게 보면 신비주의가 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제 캐릭터를 만들어야지, 해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더라고요. 저는 그저 제 결대로 가는 거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요?
다른 사람들처럼 욕심도 많은, 그게 물욕이 됐든 성취욕이 됐든, 딱 스물아홉 살의 사람인 것 같아요. 목표도 많고, 더 잘해야지, 더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도 많이 하는 사람이요. 단기적인 목표나 욕구에도 솔직하지만 장기적으로 영원한(timeless) 뭔가를 남기고 싶은 희망도 있어요. 그 사이에서 싸우면서 사는 것 같아요. 그러려면 수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그게 귀찮기도 한데, 그것조차도 제 모습이죠.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른가요?
많이 달라요. 과거에는 늘 미래만 쫓았어요. 현재가 불행하다고 느꼈으니까. 지금은 스스로 응시하는 시야가 생겼어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저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대응한다고 설명하면 될 것 같아요. 좀 더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소양이랄까, 그런 것들을 스스로 단련시킨 것 같아요.

돌아보면 가장 캄캄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말했던 순간도 있고 말하지 않았던 순간도 있어요. 정말 말 그대로 캄캄해지는 것 같은 순간도 많았어요. 그때를 이겨내게 해준 건 결국에는 시간이었어요. 내가 나를 잃지 않고 계속 견디고 버티면 결국 그게 어떤 식으로든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해요. 당연한 말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 다 해결된다.”라는 말만큼 공평한 진리는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야만 그 깜깜한 터널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루 중 나만의 시간은 몇 시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혼자 있는 시간과 혼자가 아닌 시간, 이렇게 두 개로 딱 구분이 되어 있어요.

마음속으로 자신은 몇 살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지금은 서른한두 살 정도라고 생각해요. 제가 서른한 살이나 서른두 살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요. 한 2년 전부터 계속 그래왔어요. 생각할 때마다 이미지는 바뀌어요. 저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절대’라는 말은 잘 쓰지 않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결국 저를 객관적으로 잘 보는 거 같아요. 저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어떤 모습인지 잘 몰라요. 가까이에서 10년 가까이 저를 지켜본 분들은 제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것들을 다 지켜봐왔잖아요.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세부적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저와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지금 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같아요. 저보다 저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해줄 것 같아요.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많이 있었는데, 몇 명 안 남았어요. 꼭 많을 필요가 있나 생각해보면, 서너 명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그렇다고 관계에 있어 ‘이 친구들이 있으니 새로운 사람을 굳이 만나고 싶진 않아.’ 이런 태도도 별로인 것 같아요. 관계에 대해 열려있되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감사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닫혀있되 어느 정도 열려있는, 그렇게 유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풍요롭지 않을까요.

어떻게 불릴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요?
가족은 저를 “준아.”, “준이야.” 이렇게 불러줘요. 그렇게 불리는 게 어린 시절의 저를 생각나게 해서 좋아요. 저를 완전히 인간 김남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가족이니까요. 그렇게 불리면 ‘나는 여전히 철부지구나.’, ‘이런 모습이 나에게 아직 있구나.’ 싶어서, 뭔가 순수한 마음도 들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색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파란색이요. 그림도 파란색 그림을 좋아해요. 파란색은 형용사로도 많이 쓰이잖아요. 옛날에는 화가들에게 청색이 가장 비싼 안료였어요.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파란색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저에게도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와요. 예전에는 검은색과 흰색을 좋아했는데 파란색은 제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채도가 있는 색이에요. 인디고나 울트라마린을 특히 좋아해요. 그래서 이브 클랭(Yves Klein)이나 김환기 화백처럼 파란색을 많이 쓰는 화가들을 좋아하죠.

자신을 향기에 비유하자면 어떤 향일까요?
글쎄요. 저는 향에 민감한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향을 꼽자면, 나무 냄새가 나는(woody) 향을 좋아해요. 절에서 날 것 같은 향 냄새요. 자연스럽기도 하고 적당히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또 제가 5년 가까이 쓰고 있는 바디로션의 향도 좋아해요. 사람들이 제가 그 향과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구요.

일상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족과 친구들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조금 더 넓게 생각하면 자연이요. 풀이나 나무, 물 또는 만들어진 자연이라고 해도 그런 것들을 보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다음에 책과 음악이 있어야 하고, 할 일도 있어야 하죠. 그 모든 것들을 다 품으려니 피곤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최근 자기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나요?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 살면서 제가 어떤 모습이길 원하는지 스스로 모를 때가 있잖아요. 되게 많죠. 제 기준에 맞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 고민이 도리어 저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죠.

지금 시속 몇 km로 달리는 것 같나요?
60~70km? 아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요. 자동차는 가다 서다, 가다 서다 하잖아요.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시내에선 50km로 달리기도 하죠. 그런 것처럼 저도 제 스스로 속도를 낼 때도 있고 끌려갈 때도 있어요. 온전히 자기 속도로만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무인도에 살지 않는 이상 말이죠.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는 소신이 있나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 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내면이 꽉 차있어야 해요. 사람이든 작업이든 방향이든 의견이든, 내면이 꽉 차있지 않으면 에센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에센스는 짧은 말 안에 벼락도 같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제가 아직 어리고 생각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보니까 말도 많아지곤 하는데(웃음), 제가 존경하거나 흠모하는 사람들은 핵심만 이야기하는 편이더라고요. 그분들은 그렇게 짧게 말에 핵심을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어요. 지금 제가 제 소신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아직 어리니까 조금은 요란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다만 나중에는 스스로 요란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거죠.

요즘 몰입하고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각 예술과 음악이요. 두 가지에 굉장히 몰입하고 있어요. 그 핵심에는 지적 유희가 있어요. 저에겐 지적 유희는 정말 커요. 공부도, 즐겁지만은 않지만, 그래서 시작했어요. 미술사가 엄청 방대하고 길잖아요. 미술사를 파면 건축도 알아야 하고, 철학도 알아야 하고, 역사도 알아야 하고, 문학도 알아야 돼서 결과적으로는 교양을 많이 쌓아야 해요. 역사라는 게 정답과 오답이 뒤섞여있기도 해서 또 재밌어요. 그렇게 미술사 같은 역사를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 같은 게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시각 예술을 좋아하는 건 저 스스로 정신 수양을 계속하는 것과 비슷해요. 작가가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나도 그 사람의 그림 앞에 서면, 여전히 살아있는 그 사람의 표현으로 여전히 온전한 감흥을 주잖아요. 그리고 화가는 혼자 고독하게 싸우는 투사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음악은 즉각적인 반응의 즐거움을 줘요. 시각 예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이 있나요?
'진짜 지금 자야 하는데.' 잠에 빨리 못 들면 이 생각밖에 안 해요. 그러면서 계속 '지금 못 자면 큰일인데.' 이런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런데 사실 새벽 세 시에 이 생각을 한다? 그러면 이미 끝난 거예요.(웃음) 그 생각을 안 해야 잠을 잘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참 나약한 것 같아요. 한 가지 생각이 나면 벗어나질 못하니까. 그래서 억지로 술을 조금 마시거나 샤워를 해요. 그렇게 몸을 이완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꿈'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요. 저는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해요. 그걸 보면 내가 살고 싶었던 곳이 여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마흔 살에 뭔가를 이루겠다.', 그런 것들은 사실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상관없어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꿈이라는 게 있구나.'하는 생각인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충분한 거죠.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또는 멀찍이 보이는 아지랑이 같은 그런 게 꿈인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의 인물 중 닮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처럼 살고 싶어요. 동화 속에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뭔가를 갖고 살고 싶어서예요. 사회적으로 성숙되었지만 여전히 때묻지 않은 어린이로 있고 싶은가 봐요. 철학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쓴 인간 정신의 3단계가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잖아요. 그런 의미의 어린아이요.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매일매일 만족할 수 있는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기엔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그렇게 돼보려고 이렇게 입을 뱉는 연습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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