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멤버들 사이에서 혼란이 있었다고 들었다. (웃음) 나는 하루 정도 재고하고 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슈가 형이 반대했다. 그 형은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본다.(웃음)

어떤 면에서 괜찮다고 느꼈나. 한국어로 없는 관용어구다. 보통 '피땀을 흘리다,' '피눈물을 흘리다'라고 하지 '피 땀 눈물'이라고 하지 않는다. 생소하게 들리더라. 에이스 후드라는 래퍼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 앨범 중에 <Blood, Sweat & Tears>라는 게 있다. 영어권에서는 자주 쓰이는 표현이니까 이걸 한국어로 가지고 오면 우리가 하나의 표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 땀 눈물'이라는 것도 곱씹어보면 단어의 질감이 불편하다. 뭔가를 배출하는 느낌이니까. 하루 정도 고민해봤는데 다른 분들이 이 제목을 들었을 때 섹시하든가, 더럽든가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더럽지 않게 됐으니 잘된 거지.

<WINGS>의 콘셉트가 <데미안>에 바탕을 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땠나. 어릴 때 <데미안>을 재미있게 읽었다. 뭣도 모르고 읽은 거지. '멋있는 소설이다' 이러면서.(웃음) 멋있고, 어려웠다는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WINGS> 앨범을 <데미안> 콘셉트로 만든다길래 처음부터 책을 다시 읽어봤다. 그러면서 방시혁 PD님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해가 되더라. <데미안>을 왜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라고 하는지도 알겠고. 심지어 <데미안>에 나오는 요소들과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 '화양연화'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것들이 잘 맞았다.

<데미안>의 영어 구절들을 직접 녹음하기도 했는데. 그건 방시혁 PD님 아이디어였다. K-POP이 여러가지 부분에서 복합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결국에는 유기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져가는 거다. <WINGS>에서 <데미안>을 갖고 오면서 방탄소년단의 스토리가 굳건하게 한 번 더 완성이 된 것 같다. 사람들이 K-POP을 왜 그렇게 좋아하냐, 저스틴 비버나 원디렉션을 듣지 왜 굳이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냐 라고 물었을 때 스토리라인과 멤버들의 픽션적인 케미스트리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거기다 내 목소리로 하나의 장치를 더 설정해놓으면 사람들의 몰입도가 더 높아진다. 더욱이 지금은 한국 시장만 생각할 수 없는 단계이기도 하고.

리패키지 앨범 <YOU NEVER WALK ALONE>에는 어느 정도로 참여했나. 타이틀곡 '봄날'에서는 처음으로 후렴구를 썼다. 이제까지 타이틀곡의 후렴구는 항상 전문 라이터분들이 쓰셨기 때문에 별로 욕심은 없었는데, 어느 날 샛강공원에 갔다가 쓰게 됐다. 그때 이상하게 갑자기 낙엽이 눈에 띄었다. 어릴 적 그 낙엽을 스크랩해서 말리고, 편지에 붙여서 보내기도 하던 게 생각나더라. 그러다가 20, 30분쯤 후에 '낙엽'이라고 시작되는 멜로디가 떠올랐다. 타이틀곡을 처음 들었을 때 '뭔가 이런 멜로디가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쓴 걸 합치니까 좋더라. 처음으로 '이건 무조건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작업물을 가져갔더니 다들 괜찮다고 하셨고, 결국 수정 없이 온전하게 들어갔다. 영광이었지.

공원에는 자주 가나? 공원이라는 장소를 좋아하기도 하고, 워낙 모르는 장소에 가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뜬금없이 중랑천도 가고, 청량리역도 가고 그냥 다 간다. 여기저기 차를 타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중간에 나오면 스마트폰 지도를 켜서 찍어놨다가 다음에 가는 거다. 서울에서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이제는 딱히 의미가 없더라도 못 가본 장소에 가려고 한다. 공덕역이라든지.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다. 사람들 사는 거 보고, 걸어다니는 거 보고. 내가 모르는 장소에서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간접 경험의 의미인 거다. 맞다. 실제로 그런 곳에 가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편이다. 가서 보면 나랑 상관없는 세상이지 않나. 다들 바쁘고. 머릿속에는 항상 작업에 대한 생각이 있는데, 그런 곳에 가서 여기저기 보고 혼자 생각을 하면 해결이 되는 부분도 있다. 꼭 뭔가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감정적으로 해소가 많이 되고. 이중적인 게, 일이 없으면 불안하지만 일 속에 있을 때는 일탈하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억지로라도 계속 밖에 나가서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세상에 섞이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서는 아무도 나한테 간섭을 하지 않는다. 평범한 친구들과 얘기하고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그런 데 가서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듣는 게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지금 말한 내용이 솔로곡 "Reflection"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 곡도 뚝섬에 갔다가 떠오른 것들을 쓴 거다. 그때는 아예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갔다. "Reflection"을 만들기 전에 잘 나온 곡이 하나 있었는데, 들어보니 내가 영향을 받았던 아티스트의 바이브랑 너무 비슷했다. 그게 싫었다. 회사에서는 괜찮다고 하는데 양심의 가책이 드는 거다. 기술적으로 비슷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듣기에는 분명히 이 사람한테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니까. 우리도 이제 빌보드차트며 어디며 이름이 올라가는데, 그런 식으로는 곡을 만들기 싫었다. 어쨌든 솔로곡은 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동안 믹스테이프용으로 작업했던 것들 중에서 골라 쓰려고 했는데, 그것도 싫더라. 앨범에는 엄연히 콘셉트라는 게 있는데 욱여넣는 것 같아서. 그럼 그냥 다시 하자, 싶었는데 처음부터 하려니까 너무 막막해서 뚝섬에 갔다.

거기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저녁에 가보면 사람들이 그냥 앉아 있다. 다 같이 모여 있지만 어둡기 때문에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게 좋더라. 맥주 한 캔 들고 슥 가서 같이 앉아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 이중적인 마음이 충족된다.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거. 지금 여기서 듣고 싶은 노래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를 아이폰에 녹음했고, 그걸 곡 앞부분에 실제로 깔았다. 원래 제목을 '뚝섬에서'라고 짓고 싶었지만 방시혁 PD님이 말도 안 된다고 하시더라.(웃음) 다들 "Lie," "Stigma" 이러는데 나만 "뚝섬에서"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이 곡을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왜 갑자기 뚝섬이 나오는 거지?' 이렇게 의아해하시던데 내 입장에서는 그 구절이 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거기서 시작해서 거기서 끝난 노래니까.

방탄소년단이라는 일이 커질수록 본인의 생활과 밸런스를 맞추는 게 점점 중요해질 것 같은데.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밖으로 더 자주 나가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방탄소년단에만 너무 몰입해 있으면 굉장히 허무감이 많이 들긴 한다. 무대가 끝나고 혹은 뒤에서. '지금 내가 사랑 받고 있는 게 진짜인가?' 싶은 거다. 그래서인지 사적으로 만나는 친구들 중에 연예인은 GOT7의 잭슨밖에 없다. 아니면 MOT의 이이언 형이나 (김)윤아 누나도 가끔 만나고. 이상하게 내 이미지 때문인지, 내가 호불호가 갈리는 스타일인지 연예계에 데뷔하고 나서 친구가 안 생기더라. 늘 만나는 건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고. 그들과 만나서 군대 다녀온 이야기, 취업한 이야기 등등을 들을 때 행복해진다. 신문이나 뉴스도 자주 보려고 하는 게, 방탄소년단과 팬들의 세계가 굉장히 확고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나. 가끔 여기서 벗어나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 자체의 모습과,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직업인으로서 모습의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팀의 리더로서는 어떤가. '다음에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고민, 리더로서 조금 뒤로 물러나도 되겠다는 두 가지 생각을 다 한다. 내가 팀에 야망을 불어넣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이미 이 정도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서 안주할 것인가, 더 뛸 것인가. 더 뛸 수 있는 범위가 충분히 보이는데 안주하는 건 맞다 틀리다기보다는, 내 기준에서 좀 멋이 없다. 이쯤 되면 소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우리가 어디까지 가는지 봐야 한다고, 우리가 길을 열어야 한다고, 그걸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멤버들에게 말하는데 고맙게도 다들 공감해주더라.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완주해야지.

랩몬스터만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서고, 앞서 이야기했듯 야망이 필요할 때 불어넣어주고, 그런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사실 아이돌로서는 다른 친구들이 더 잘한다. 각각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뭘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 것은 열심히 하되 뭔가를 너무 장악하려고 하지 않겠다는 거다. 데뷔한 지 4년이 다 돼가기 때문에 그럴 단계가 지나기도 했고, 그 편이 다른 친구들이 재능을 발휘하기에도 좋을 것 같더라. 예전처럼 무작정 해, 하자,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된다.

그렇다면 2017년 랩몬스터의 화두나 과제는 뭔가. 해도 해도 계속 오는 게 숙제라….(웃음) 일단 팀으로서는 투어. 콘서트와 투어는 가수의 종합선물세트랄까, 결정판인 것 같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그 전까지 수많은 것들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콘서트를 어떻게 잘할 것인가, 사람들이 얼마나 호응을 해줄 것인가가 가장 큰 화두이자 고민이다. 개인적인 과제는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다. 작업에 정체기가 와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 시점이다. 머리로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데 몸이 너무 바빠서 그런지 마음이 계속 앞으로 안 나가더라. 솔직히 아직도 답을 못 내렸다. 2017년에 분명히 내 음악을 많이 내야 하는데, 글쎄. 조금 무섭기도 하고, 내가 나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상황이다.

그럴 때 뭘 떠올리면서 극복하려고 하나. 공연에서 팬들을 마주할 때의 느낌. 이 사람들이 오늘 밥도 안 먹고, 영화도 안 보고, 정말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줬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내가 정말 엄청난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실감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거다. 어릴 적 꿈이 완벽한 형태로 실현되는 법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 꿈이 현실이 됐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